27년만에 ‘고난의 행군’ 끄집어낸 김정은 집권 10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김정은정권의 앞날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권력을 옹립하고 비호(庇護)해 주던 핵심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거나, ‘혁명화교육’ 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철직하여 ‘유배’를 보내 는 악행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 치지 않고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호언(豪言) 장담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제외한 북한전역에서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풀뿌리 시장경제’의 역 할을 하는 장마당을 금지시키는 일방적 조치를 취하여 그 원성(怨聲)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만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당 세포 비서대회’의 폐회사에서 “그 어떤 우연적인 기회 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 어디에 기 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고 단언하는 가운 데 앞으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김 위원장은 어떤 의도하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를 새삼 강조 하면서 이런 언급을 한 것일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를, ‘고난의 행군’이란 용어가 북한땅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 으로부터 27년여 전인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 망하고 나서부터이다. 당시 지병인 심근경색으 로 급사(急死)한 김일성의 뒤를 이어 제2대 절대 권력 세습자로 등장한 김정일은 3년여의 기간 동안 ‘유훈(遺訓)·조문(弔問)정치’를 행해왔는데, 바로 이 기간을 전후하여 수많은 아사자가 속출 하였었다. 항간의 보도에 의하면 적어도 200만 ~300만 명에 달하는 인민들이 “제대로 먹지 못 하여 굶어 죽었다”는 설(說)이 제기될 정도로 매 우 엄혹한 상황에 직면하였는데, 이를 통칭하여 ‘고난의 행군시기’라고 하였다. 당시 북한당국은 김정일의 1996년도 신년공 동사설을 통해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사회주의 3대 진지를 튼튼히 다지며 백두밀영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싸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북한당국은 이 시기 인민들이 단순하게 먹지 못하여 사망한 것 이 아니라 “국제적인 봉쇄조치와 함께 100년만 에 닥친 매우 큰 자연재해가 겹쳤기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누적된 식량난 등 극심한 경제난으 로 주민동요와 체제일탈현상 등 체제위기가 본격화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행군’ 을 해야 한다는 구호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기간 동안 인민들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결속, 경제난 돌파를 독려하기 위한 수 단으로 원용하였으며, 이와 함께 이 행군정신을 경제건설에서 성과를 올리는 선동구호로 이용하 면서 서정시 『끝나지 않은 행군길』, 가요 『고난 의 행군정신으로』 등과 같은 관련 영화들을 잇달 아 제작, 발표하였다. 이어 1998년은 ‘사회주의 강행군’, 1999년은 ‘강성대국 건설에로 전진하 는 새로운 전환의 해’로 정하면서 인민들로 하여 금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고난의 행군’ 주장은 김 정일시대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제시된 것이 아 니라 김일성시대때부터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강 조되어 왔던 것으로, 그 연원은 김일성이 항일빨 치산활동을 하였다고 주장하는, 1938년 말에서 1939년 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북한의 우 상화물인 ‘세기와 더불어’와 같은 저작물에서 북 한당국은 김일성이 항일무장활동을 벌일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100여 일 동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본군을 격파하면서 중국의 몽강현으로부터 조선의 백두산지구까지 진출했 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은 “독창적인 유격전술과 혁명전 사들에 대한 사랑,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공 산주의적 의리에 기초한 끝없는 충실성, 숭고한 혁명적 동지애와 불굴의 투쟁정신이 있었기에 일제 수십만대군의 포위공격에도 불구하고 영하 40도의 혹한과 식량난 등 온갖 난관을 물리치고승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행 군은 김일성이 1938년 이른바 ‘남패자회의’에서 제시한 새로운 전략적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혁 명의 행로였다고 주장하면서, 1939년 4월 ‘북대 정자회의’를 소집하여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고 또다시 조국에 진군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했다 고 부연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이란 곧 ‘핵포기 않겠다’는 뜻 이런 김일성시대의 ‘고난의 행군’을 이어받아 김정일도 “자연재해 등”을 구실로 인민들의 사상 의지를 강조하는 가운데 국가차원의 배급을 중 단시키고 군인건설자들을 경제건설 전면에 내세 우면서 안변청년발전소와 원산-금강산철도 등 의 건설에 진력하였다. 말하자면, 북한에 있어서 ‘고난의 행군’이란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의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의미하는 용어로, 그 특성은 “국가나 당차원의 배급 중단, 굶주림, 질병과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고 난의 행군 시기를 전후하여 거의 모든 산업부문 이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배급도 중단되었다. 이 시기는 인민들 스스로가 ‘장마당’이라는 공 간을 통해 자급자족을 해야만 하는 엄혹한 상황 이 도래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집단주 의 의식과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사회주의적 가 치관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다양한 비(非)사 회주의적 행위가 확대되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시 대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이 재연(再演)되고 있으니, 이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 민족 의 재앙이자 북한당국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반 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남북간 및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국가의 지 도자’임을 자처하던 김정은 위원장이 1만 명에 달하는 말단(末端) 간부들인 ‘당세포’들을 모아 놓고 “인민들에게 최대한의 물질-문화적 복리를 안겨주기 위하여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역설한 것은 정상적인 사고에서는 나올 수 없는 정책의지의 발현인 것이며, 이는 곧 “핵(核) 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단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새 세 대들의 사상과 정신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 어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청년들의 옷차 림과 언행 등을 당세포가 통제할 것을 주문하기 까지 하였다. 특히 김 위원장의 실세(實勢)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당 조직비서 겸 정치국 상무위원인 조용원은 세포비서대회에서 “당 세 포비서들이 당적 원칙과 혁명적 원칙이 없이 반 사회주의·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도 높게 벌 이지 못한 문제”를 엄중히 비판하면서, “당세포 가 반(反)사회주의·비(非)사회주의를 쓸어버리 는 발원점이 되어 맹렬한 투쟁을 벌이며 도덕기 강을 확립하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 나갈 것”을주문한 점도 예의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北, 이대로라면 외톨이로 남을 것 말하자면, 김 위원장과 조용원의 이런 현실인 식을 토대로 한 정책추진의지와 입장은 “인민 들이 굶어 죽어도 체제생존과 보위를 위해서는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편협하고 근시적인 시좌(視座)에서 비롯된 것임과 동시에, ‘막가파식’의 극단적인 발상(發想)을 드러내는 것으로 북한정권의 전도(前途) 를 매우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엔(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 북제재와 압력이 이완·완화되기는커녕 날이 갈 수록 강화되고 있고, 잇따른 태풍과 홍수 등 자 연재해로 많은 인민들이 아사(餓死)상태에 이를 정도로 만성적인 식량난이 점점 심화되고 있으 며, 여기에 더하여 국경봉쇄 등 과도한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인해 인민들의 내부 불만이 비등(飛騰)하는 가운데 ‘장마당 봉쇄조치’까지 취해지자 “궁지에 몰린 쥐가 죽기살기로 고양이에게 덤벼 드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위원장이 자신의 선대(先代) 수령들과 같이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면서 인민들에게 자 력갱생과 자강력을 강요하는 것은, 어떠한 상황 이 전개되더라도 “자신의 생존과 체제유지를 위 한 핵이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절대 포기하 지 않을 것임”을 단언하는 시대착오적인 망상(妄想)을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인민들을 담보로 하겠다는, 어떻게 보면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부 나비”와 같은 다분히 충동적이고 과격한 ‘비정상 국가의 지도자’임을 스스로 자인(自認)하는 것이 라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이 변화하고 있는 현 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자신의 고립무원한 입장 만을 내세운다면 그 앞날은 매우 불투명하며, 이 런 극단적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혈맹국인 중국 으로부터도 외면당하여 문자 그대로 북한정권은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 외톨이”로 남 게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