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용이 우선-작전성능·기술이전은 뒷전







김귀근
연합뉴스 국방부 출입기자
threek@yna.co.kr


건군 이래 최대 무기도입 사업으로 꼽히는 차기전투기(F-X)사업이 막판 평가 과정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작년 10월 중으로 예정됐던 기종 선정 일정은 11월 중순으로, 이어 지난 6월로 거듭 미뤄졌고 이제는 연말을 향해 기약없이 표류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핵심 억제전력으로 도입하는 F-X가 작전성능이나 선진국 항공기술 이전과 같은 문제보다는 비용이 최우선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총사업비를 묶어 놓고 기종을 평가하다보니 마치‘물건 값을 흥정하듯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는 작전성능이나 한국이 전투기를 독자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마치 비용만으로 기종을 평가하는 듯한 모습은 앞뒤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막바지 기종 선정 작업에서 비용을 최우선시 한다는 것은 결국 F-35A(록히드마틴), 유로파이터(EADS), F-15SE(보잉) 등 3개 기종의 성능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본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 3개 기종이 성능 뿐아니라 장단점이 분명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비용을 최우선시하는 지금과 같은 평가 작업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방사청“사업비내 못 들어오면 소요 재검토”
방위사업청은 7월 25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 주재로 제68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를 개최해 차기전투기(F-X) 가격입찰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5일까지 3주간 총 55회의 가격입찰을 진행했으나 사업비 8조 3천억원을 충족하는 기종이 나타나지 않아 입찰을 중단하고 사업추진방안 변경을 재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방사청의 백윤형 대변인은 방추위가 끝난 직후 가진 언론브리핑에서“차기전투기 입찰재개는 유찰 후 (사업을) 재추진하는 방안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해 방추위 심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결정은 입찰을 잠정 중단한 이후 20여일 동안 국방부, 합참, 소요군 등 관련 기관과 국회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으며, 지난번 입찰과 동일한 조건으로 입찰을 재개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는 국익에 가장 유리한 방안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방사청은 8월 셋째주 가격입찰을 재개해 후보기종의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백윤형 대변인은“1개 기종이라도 사업비 내로 들어왔을 때 3개 후보기종을 대상으로 종합평가를 하게 되고 평가결과 사업비 내로 들어온 기종만 적격으로 판정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의 재정운용계획 등을 고려할 때 8조 3천억원인 사업비를 증액할 수 없기 때문에 고정된 사업비를 충족하는 기종만 계약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방사청은 입찰 재개 이후에도 사업비 내로 가격을 제시하는 기종이 없으면 유찰을 선언한 뒤 소요 재검토 또는 사업비 증액 등을 거쳐 사업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사업비가 증액되지 않으면 전투기 분할 구매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추론이다.
그러나 구매대수 축소나 분할 매수 등 사업방식 변경을 결정하면 차기전투기의 전력화가 2년 정도 늦어져 전력공백 문제가 발생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방사청이 사업비 증액의 명분을 쌓으려고 요식행위로 추가 가격입찰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가격입찰에 관여하는 한 관계자는“추가 가격입찰에도 사업비를 충족하는 기종이 없으면 사업비 증액 등을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어떤 기종이 적극적으로 가격을 낮추겠느냐”고 지적했다.
F-X 평가 가중치, 비용 30%, 성능 51.59%
방사청은 작년 F-X 사업에 대한 평가항목 가중치를 수명주기비용 30%, 임무수행능력 33.61%, 군 운용적합성 17.98%, 경제·기술적 편익 18.41%로 설정했다.
전투기 획득비와 30년 운영유지비로 구성되는 수명주기비용이 3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총사업비를 8조 3천억원으로 책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1대당 순수 기체가격 991억원 꼴이다. 2011년 F-35를 차기전투기로 결정한 일본은 대당 가격 89억엔, 부품까지 포함해 99억엔을 4대 도입비로 작년에 예산을 반영했다.
성능 항목은 임무수행능력과 군 운용 적합성으로 나눠 평가했다. 세 기종 모두 군 운용적합성을 만족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18.41%를 차지하는 경제·기술적 편익은 한국형 전투기(KF-X)를 개발하는 보라매 사업 등과 관련한 기술이전을 포함한 절충교역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일본은 2011년 성능을 50%, 기술이전과 가격을 각각 22.5%, 후속군수지원을 5%로 평가해서 F-35를 결정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평가항목 가중치가 다른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로파이터, 우수한 공중지배력
3차 F-X사업에는 록히드마틴의 F-35A,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3, 보잉의 F-15SE 3개 기종이 경합 중이다.
3개사는 기종을 낙점받기 위해 한국에 유인책을 각각 제공하며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막바지에 와서 입찰과정이 늦춰지고 사업방식 재검토 이야기까지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로파이터는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전투기다. 영국은 기체 앞부분과 조종석을, 독일은 동체를,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양쪽 날개를 각각 개발 생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개발·생산국을 중심으로 영국에 232대, 독일에 180대, 이탈리아 121대, 스페인 87대가 계약됐다. 공동개발국이 아니지만 오스트리아도 18대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이 전투기의 장점은 우수한 공중지배력 능력과 기동성이다. 공중전은 우리 공군이 운용 중인 F-15K보다 우세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작년 6월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꼽히는 F-22 랩터와의 모의 공중전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유로파이터는 속도나 항속거리, 상승고도, 레이더 탐색거리 등에서 모두 뛰어난 성능을 갖추고 있으나 레이더망을 회피하는 스텔스 기능이 없는 것이 단점이다. 스텔스 기능을 위한 내부 무장도 안되는 기종이다.
지난 5월에는 KF-X 개발 사업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EADS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KF-X 사업에 2조원을 현금 투자하겠다”면서“이는 한국이 F-X 사업과 KF-X 사업을 통해 전투기 생산국으로 올라서도록 파트너가 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특히 EADS는 전투기 항전시스템 개발을 위한 한국의 독자적인 소프트웨어센터와 유지보수센터(MRO), 개발된 한국형 전투기와 무장체계에 대한 수출 지원도 약속했다. 이 회사는 앞서 F-X 60대 가운데 53대를 한국에서 생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항공업계는 EADS가 KF-X 사업에 자본 투자 계획까지 밝힌 것은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미래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F-35A, 스텔스 기능이 강점
F-35A는 F-22보급형 전투기로, 가격이 비싸고 유지비가 많이드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최대 장점은 레이더망을 회피하는 스텔스 기능이다. 유사시 적의 레이더망에 탐지되지 않은채 적진 깊숙한 곳의 핵심표적을 괘멸시킬 수 있는 갓리 장점이다. 적 전투기 레이더에도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적 전투기를 먼저 보고 타격할 수 있는 것도 우수한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 개발이 최종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르면 2016년께나 계약자들에게 인도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한국과 계약하면 2017년께나 인도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스텔스 기능이 F-22에 못미치는 것으로 추정되고 쌍발기인 F-22와 달리 단발기여서 엔진 고장 때 생존성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격도 3개의 경쟁기종 가운데 가장 비싸고 유지비도 가장 많이들 것이란 분석이다.
이 기종을 제안한 록히드마틴도 만약 F-X 사업을 수주할 경우 한국의 군사통신위성 1기 제작은 물론 발사까지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록히드마틴은 지난 6월“한국이 완전하게 소유하고 자주적으로 운용하게 될 새로운 군사통신위성 1기의 제작과 발사를 지원할 것”이라며“이 위성은 한국 정부와 각 군에 자연재해와 격상된 군사안보 상황에서의 보안 통신성능을 상시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군은 2021년까지 5기의 군사위성을 독자적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또 한국 공군에 최첨단 실시간 가상 모의훈련 체계(LVC)의 설계와 운영기술도 제공하고 KF-X 개발사업에 대한 기술(설계) 지원뿐 아니라 투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F-15SE, 아시아권 최우수 전투기
F-15SE는 F-15 전투기의 개량형이다. 보잉은 한국에 판매를 제안한 이 기종에 내부무장창을 설치하고 레이더망 탐지를 위한 스텔스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 기종은 현재 아시아권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검증됐다. 우리 공군에서 60대가 이미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운영 노하우와 유지, 보수 인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가격도 3개 기종 가운데 가장 낮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공중전 능력에서 유로파이터에 떨어지고 스텔스 기능에서는 F-35에 못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F-15SE를 제안한 보잉도 경북 영천에 항공전자장비 MRO 센터를 설립키로 하고 설립사업 투자신고서에 서명,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 시설은 우리 공군 F-15K 전투기 및 기타 국가에서 운용 중인 다른 기종에 대한 항공전자장비 부품 공급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될 예정이다.
공군“F-X 늦추면 전력 공백 우려”
F-X 사업이 늦춰지면서 공군도 속을 태우고 있다. 고성능 전투기 60대를 도입하는 계획이 1~2년 뒤로 늦춰지고 이에 따른 전력 공백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감 때문이다.
공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체 전투기 가운데 50% 이상은 도입된 지 30~40년이 지난 노후 기종이다. 2010년 국방백서를 기준으로 하면 남한은 460여 대, 북한은 820여 대의 전투기를 각각 운용하고 있다.
우리 전투기 가운데 F-4 팬텀 60대는 1967~1979년산으로 도태 시기가 이미 지났지만 공군은 33~45년 된 이 전투기를 정비해서 2019년까지 운용할 계획이다.
180여 대의 F-5E/F 전투기는 1973~1981년 생산된 기종으로, 이 중 5공 때 면허 생산한 KF-5 제공호 60대는 수명 연장작업을 통해 2023년까지 사용된다. 나머지 60여 대는 2020년께 비행을 완전히 중단할 계획이다. 2019년까지 도태되는 공군 전투기는 180여 대에 이른다.
공군은 FA-50 국산 경공격기 60대를 도입할 계획이어서 2019년께 우리 영공 수호를 책임질 전투기는 340여 대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우리나라의 전투기 적정 규모를 430여 대로 판단하는 것보다 100여 대가 부족한 것이다.
공군 한 관계자는“공군은 인도(전력화) 시기와 작전요구 성능, 소요량을 충족시킨다면 어느 기종이라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다만, 전체 전투기 가운데 50%가 노후화됐고 당장 F-5 기종은 올해부터 도태되기 때문에 F-X 사업 일정을 연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