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milhoon@hanmail.net

 “설마~”
사람들은‘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사건은,사고는, 위기는, 설마 설마 한 날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도… 그날은 휴일(토,11월 16일)이었다. 첫 추위 때문에 아침잠에서 깨어났을 때 쌀쌀함이 느껴졌다. 습관 때문에 눈은 떴지만, 코끝에 와닿는 차가움에 전날의 마감 피로감이보태져 더 더욱 잠을 붙잡고 싶어졌다. 그런데 실눈으로 본 창밖이 새하얗지 않은가“첫 눈이 내리는구나!”
 그 바람에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안개.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새하얗고 짙은 안개였다. 필자는 고층 아파트에 산다. 건너편 아파트동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 위에 뜬 기분, 푹신한 솜에 싸여 있는 맛…. 첫 눈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밝았지만 내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에 큰 소리로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자.
 잠시 후“안개 봐라”고 한 내 소리에 따라 나오던 큰 아이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헬기가 서울 삼성동에서 아파트에 부딪쳐 추락했다네요”라고 했다.‘휴일 아침에 웬 헬기가 강남에 들어가나? 육군 헬긴가? 삼성동 쪽으로는군 헬기가 잘 가지 않는데. 요인들이 이동하다 사고가 났나? 그럼 큰 사건인
데.’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오전 8시 55분 안개 속에서 LG전자 마크가 있는 시콜스키의 S-76 헬기가 8층인 아이파크 아파트의 22~26층에 충돌해 21~27층의 벽과 유리창을 파손하며 추락했다는 것이다. 희생자는 헬기 조종사 두 명이라고 했다. 그리고느긋함에서 깨어나 항공기의 고층 빌딩 충돌 문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피랍된 여객기의 충돌테러로 무너진 것을 떠올린 것이다.

 국가가 할 일은 매우 많다. 그중 하나가 예상된 위험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울공항으로 불리는 공군 성남기지에서 직선으로 5,700여m 밖에떨어지지 않은 곳에 높이 555m 123층의 초고층 건물인 제2롯데월드(롯데슈퍼타워)가 지어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울공항이 어떤 곳인가. 대통령 전용기를 비롯한 VIP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 정상들도 이곳으로 출입한다. 이곳에 내려 헬기를 타고 청와대로 이동했다가 다시 헬기를 타고 이 공항으로 와 출국을 하니, 외국 정상에 대한 경호 때문에 서울 시민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적다. 이들이 김포나 인천공항으로 출입국한다면 시민들은 몇 시간씩 항공기 이용을 금지당해야 한다.
 성남기지로서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연평도 포격전 경험이 있는 우리는 북한 전연지대(전방지대)를 샅샅이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밀한 카메라를 탑재한 금강 정찰기를 띄운다. 금강은 주기적으로 휴전선 남쪽을 동서로 비행하며 휴전선 이북의 인민군 동태를 촬영한다. 그리고 과거 사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있으면 북한군이 비밀 이동을 했다고 보고 예의주시한다. 비밀 이동은 기습을 위한 예비동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통신을 한다. 그 통신을 엿들 수 있다면 상대 속을 꿰뚫게 된다. IT산업의 발달 덕분에 무선無線으로 오가는 신호를 포착해 해독하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암호를 걸어도‘위대한 컴퓨터’는 결국 암호의 로직을 풀어내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통신은 유선으로 한다. 그러나 유선으로 흐르는 신호도 외부로 나오게 된다. 현대의 기술은 유선에서 나오는 신호도 포착해낼 수 있게 하였다.
 때문에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통신망은 지중地中화한다. 땅을 깊게 파서 유선을 묻고 그 선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지중화한 유선을 흐르는 신호는 포착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보당국도‘여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금강은 터보프롭기이기에 낮은 고도로 떠서 촬영한다. 따라서 적진으로 들어가면 적의 쏜 방공 미사일에 격추될 위험이 있어, 아군 지역에서만 비행하며 촬영한다.
 이 한계를 극복한 것이 적의 방공미사일이 올라 올 수 없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며 촬영하는 U-2기다. U-2기는 미국만 보유하고 있다. 북한 깊숙한 곳에 대한 촬영은 주한미군 기지에 전개된 U-2기가 한다. 그리고 요즘은 중고도와 고고도 무인기도 그 역할을 한다. 중고도 무인기의 대표가 미국의‘프레데터’이고 고고도 무인기는‘글로벌호크’다. 이들은 사람을 태우지 않으니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없다.

 사람은 먹고 배설해야 한다. 숨을 쉬어야 하니 지상과 같은 농도의 공기도 필요하다. 추위에 약하니 난방시설도 갖춰야 한다. 급격히 기동하면 정신을 잃어버리니 살살 움직이게 설계해야 한다. 무인기는 이러한 것이 필요 없는 것이다. 따라서 U-2보다 작게 만들지만 훨씬 더 오래 체공하며 촬영할 수 있다. 여기에 정밀 유도 무기를 탑재하면 유사시 적의 핵심부를 초정밀 사격으로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여기에 미국의 정찰위성까지 가세시키면 한미연합군은 북한이 그들 영역에서 펼치는 은밀한 행동을 상당부분 파악할 수 있다.
 적이 길게 땅을 파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통신 지중화 공사를 한다고 판단하고, 그 공사가 이어진 곳을 추적한다. 그 공사의 단말端末에는 지중화된 통신을 받아야 할 비밀 부대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면 통신정보를 분석하지 못해도 적의 비밀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정보의 세계다.

 성남기지에는 북한 지역을 촬영하는 금강 정찰기와 함께 북한 전역에서 발생하는 신호정보를 포착하는 백두 정찰기도 이륙한다. 미군만큼은 못해도 우리의 중요 정보자산이 뜨고 내리는 곳이 성남기지인 것이다. 이곳에는 일부 수송기도 배치돼 있다. 유사시 이 수송기들이 대단한 역할을 한다. 유사시는 전시일 수도 있지만 비非전시일 수도 있다. 비전시의 대표가 서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난 경우다.
 큰 지진이 일어나면 서울의 도로와 철도망이 붕괴된다. 1,000여만명이 상주하고 2,000여만명이 출입하는 대도시의 교통망이 끊어지면 당장에‘먹을 것, 마실 것’이 부족해져 난리가 일어난다. 그때 성남기지가 중요한 양육揚陸거점이 된다. 대지진이 일어나면 성남공항의 활주로도 파괴된다. 그러나 성남기지는 서울 인근에서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대규모 공지空地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공지로 다른 지역에서 날아온 수송기나 헬기들이 구호 물품을 투하하는 것이다. 그리고 갖가지 방법으로 물품을 서울 시내로 옮긴다. 성남기지와 같은 빈 땅이 있어야 유사시 서울은 생명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많은 수송기들이 날아오는데 이 공항에서 5,7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555m의 초고층 건물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날씨가 나쁜 경우까지도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큰 지진이 일어나면 그 건물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 건물은 성남기지로 투하되는 긴급 구호품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할 터인데, 현실 세계에서는 그 건물이 긴급 구호를 방해해 버린다. 그 건물은 전시와 유사시는 물론이고 평시에도‘위협’이 될 수 있다. 초고층 아파트를 들이박는 헬기 같은 사고를 태평한 시기에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금강이나 백두 정찰기는 물론이고 성남기지를 출입하는 수송기들은 덩치가 크기에 양쪽 날개에 엔진이 달려 있다. 차를 몰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아주 아주 가끔’은 달리던 차의 엔진이 꺼지는 일이 있다는 것을.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조종사들은 비행 중 엔진이 꺼졌을 때 되살리는 기술을 연마한다. 특히 전투기 조종사들은 비행 중에 엔진을 껐다가 다시 살리는 것을 반복해서 연습한다.
 사고는, 사건은, 위기는 예상하지 못한 경우에날개 엔진이 갑자기 정지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오른쪽 엔진은 살아 있으니 이 비행기는 저절로 왼쪽으로 돌아간다. 그때 조종사가 최선을 다해 해야 할 일은 착륙이다. 한 개 엔진으로는 양력揚力이 약해 계속 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 꼬리 날개에는 비행기의 비행 방향을 바꿔주는‘방향타’가 있다. 조종사는 방향타를 반대로 돌려 항공기가 왼쪽으로 덜 돌게 하는 쪽으로 통제하면서 다시 활주로에 내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비행기는 왼쪽으로 선회한다. 비행기에게 5,700여m는 정말 짧은 거리다. 그런데 그런 시도를 막 하는 와중에 555m의 거대한 건물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면….

 전시에 성남기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때 우리 전투기들은 북폭北爆을 한다. 스텔기가 아닌 우리 전투기들은, 북한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동·서해로 우회하거나, 산 그림자에 숨을 생각으로 초저공비행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일 뿐 표적을 제거하려는 시점에서는 결국 북한군 레이더에 걸리게 된다. 그 와중에 아군기들은 재빨리 JDAM 같은 폭탄을 투하해 목표를 달성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복귀를 시도한다. 그때는 우회비행과 초저공 비행으로 많은 연료를 소비한 다음이니 최단거리를 최고속도로 비행하는 방법을 택한다. 아군기를 포착한 적은 방공미사일을 쏠 것이고 그들의 전투기를 출격시켜 요격을 시도한다. 위험에 처한 우리 조종사는 채프를 쏴 적 미사일을 따돌리거나 애프터버너를 켜 아군기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애프터버너를 켜면 전투기의 연료 소모량은 급증한다.
 성남기지는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공군기지다. 물론 성남기지 북쪽에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이 있지만 방어능력이 없는 두 공항이 유사시 공항으로 기능할지 의문이다. 따라서 귀환하는 아군기 가운데 연료가 떨어진 것은 가장 가까이 있는 성남기지로 돌아온다. 공군은 작전 노출을 줄이기 위해 날씨가 나쁜 날 할 수도 있다. 흐린 날 북폭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날 간신히 돌아오는 아군기가 안개 속에, 혹은 구름 속에서 갑자기 123층 건물을 마주한다고 생각해보자. 북폭을 완수한 그 날 이 땅에서 더 큰 남폭南爆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성남기지에는 KA-1 전술통제기가 배치돼 있었다. 전술통제기는 우리 육군을 위협하는 적 지상군을 공격해주는 지원 작전과 적 지상군의 움직임을 포착해 아군에 알려주는 역할 등을 한다.
 적 지상군의 진격이 시작되면 가장 많이 활동해야 하는 것이 전술통제기이다. 그런데 이 비행기는 속도가 느리다. 속도가 빠르면 적 지상군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투기보다 천천히 날면서 낮게 날아야 적 지상군을 공격할 수 있다. 때문에 전술통제기는 전방에 배치한다. 그래야 천천히 이륙해도 바로 전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2롯데 월드 건설을 논의하면서 공군은 전술통제기 부대를 후방으로 보냈다. 서울을 지키기 위한‘가드(guard)’하나를 버린 것이다. 제2롯데월드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성남공항은 전시와 전시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는 유사시에 대비해서는 물론이고 평시에는 VIP 탑승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곳이다. 그러한 성남기지 옆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이미 허가가 났으니 또 다른 건물도 들어서게된다. 그렇게 되면 건물의 안전을 위해 성남기지를 없애라는 소리가 나오게 된다. KA-1을 뺀 우리는 더 큰 가드를 더 많이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살아도 되는 것일까. 지금 당장은 비상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비상구 출입구에 잔뜩 물건을 쌓아놓으면 유사시 어떻게 대피할 것인가.

 사람들은 절대로‘바보가’아니다. 9·11을 본 그들은 쉽게 옮길 수 없는 공항 옆에 있는 초고층 건물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지금 서울은‘공실空室 난’이다. 남아도는 사무실과 아파트 빌딩이 매우 많다. 그런데 123층 건물이 들어서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건물들은 손님을 뺏길 것이고, 그 건물도 완전 분양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초고층 건물은 랜드마크로 가치가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리 경제성이 높지 않다. 건물의 상당부분을 높이를 지탱하기 위한 기둥, 각 층마다 사람과 물건을 내려놓기 위한 엘리베이터. 각 층에서 사용할 물을 처리한 상하수도와 전기 시설 등을 넣은 많은 공동구를 설치해야 하기에 넓은 공용면적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높은 가격에 분양하거나 임대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초고층 건물을 지은 이들은 실패하거나 실패로 다가가고 있다. UAE의 부르즈 칼리파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여러 곳이 초고층 건물 건설을 포기했다. 제2롯데월드가 만들어지면 또 서울 잠실의 교통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역대 정권들은 모두 제2롯데월드 건설을 불허했다. 종북 시비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노무현 정부조차도 제2롯데월드 건설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허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차원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하더니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공군과 국방부의 반대를 누르고 허가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재임 중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어머어마한 도발을 당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대포동 2호 발사도 허용했다. 보수라는 타이틀이 멋쩍을 정도로 북한에 휘둘리는 한계를 노출했다. 경제를 위해 안보를 희생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안보야 말로 경제를 일으키는 최고의 인프라라는 것을 경시했다.
 제2롯데월드는 성남공항으로 이착륙하는 항공기가 걸리지 않을 높이인 30~40층 정도로 짓는 게 합리적이다. 그것이 롯데 그룹도 사는 길이다. 제2롯데월드를 북한의 류경호텔로 만들지 않는 길이다. 기업도 살고 안보도 사는 길을 우리는 찾아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