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
연합뉴스 국방부 출입기자
threek@yna.co.kr


 국회에서 11월 14일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처럼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국방기술품질원이 군납업체들이 시험성적서를 대거위조, 변조한 행위를 적발한 것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회의에 출석한 기품원 최창곤 원장을 일으켜 세워 제대로 일했다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의원은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기품원 담당자들에 대한 대규모 포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군에 납품되는 군수품의 품질을 검사해 내는 것은 기품원의 몫이다. 기품원은그간 군납업체들을 대상으로 이번과 같은 고강도 군수품 전수 조사를 한적이 매우 드물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는 3년간 납품된 군수품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지만 만약 범위를 10년 이상 끌어올린다면 이번보다 더 많은 업체들이적발될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모처럼 기본으로 돌아간 기품원
 기품원은 11월 11일 군수품의 부품과 원자재를 납품하는 34개 업체가 공인 시험성적서를 125건 위조, 변조한 사례를 적발하고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기품원은 최근 3년간 납품된 군수품 13만 6천 844개 품목을 전수조사한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위조나 변조를 통해 납품된 품목은 정상품으로조속히 교체할 계획이다.
 전수조사한 배경은 군수품 품질에 대한 국민적 관심 제고와 높아진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품질관리강화 종합발전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로 인해 1차로 외부기관에 위임한 군수품 시험성적서를 확인 검증 대상으로 삼았다.
 검증 대상은 2011년부터 올해까지 계약된 품목이었고 지난 6월 10일부터 10월30일까지 4개월 조사 활동을 펼쳤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전차, 자주포, 헬기 등 무기나 군용 장비에 쓰이는 부품이나 원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의 시험성적서 위조 및 변조 사례가 23개 업체, 103건에달했다.
기품원에 따르면 A 업체는 구난전차 부품인 브래킷 등을 주계약업체에 납품하면서 무려 57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 및 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B 업체는 K-9 자주포 등에 쓰이는 절연판 등을 납품하면서 9건의 시험성적서를, C 업체는 수리온 기동헬기에 쓰이는 와이퍼조립체 원자재를 납품하면서 2건의 시험성적서를 각각 위·변조했다고 한다.
 K55A1 자주포, K-1·K-2 전차, M48 전차, K-10 탄약운반차 등의 부품이나 원자재를 주계약업체에 공급하면서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납품업체도 있었다.
 또 주계약업체로 식품이나 피복류 등을 납품하면서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사례는 11개 업체, 22건에 달했다.
 그동안 기품원은 핵심 군수품에 대해서는 직접 품질관리를 하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위험도가 낮은 비핵심 품목에 대해서는 계약업체에 위임해 공인시험기관이 발행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위조 및 변조 사례는 품질관리 위임 품목에서 발생한 것으로 제도상의 허점을 악용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최창곤 기품원장은“이번 위·변조 사례는 품질관리 위임 품목에서 발생한 것으로 제도상의 허점을 악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위·변조 품목들은 심각한 정도는 아니며, 지금까지 이로 인해 장비가동 중단이나 운용 간 불만제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하지만 내구도와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군과 협조해 장비 운용에 차질이 없도록 전량 리콜해 정상품으로 교체하고 해당 업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품원은 시험성적서를 위조 및 변조한 납품업체와 주계약업체에 대해서는 입찰참여 제한 등의 제재를 하기로 했다. 특히 위조 및 변조한 업체들에 대해 법적 고발조치와 함께 관련기관에 통보해 손해배상 청구, 부정당업체 제재 및 입찰 배제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도 높은 후속 대책을 내놨다.
 앞으로 검증 범위를 확대해 5년 전 납품 물량까지 추가 검증을 실시해 위조 및 변조 업체가 드러나면 같은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기품원은 시험성적서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해 시험분석 의뢰를 업체 주도에서 기품원 주도로 변경하고, 납품업체가 제출한 시험성적서를 검증하기 위해 공인시험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방침이다.
 최창곤 원장은“주계약업체도 시험성적서를 위조 및 변조한 납품업체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며“계약상의 책임이 있는지를 따져서 주계약업체 역시 계약상의 제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시험성적서 위·변조 백태… 수리온 헬기 부품까지
 기품원이 적발한 위조 및 변조 사례를 보면 그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상에 굴러가는 장비는 물론이고 하늘을 나는 헬기 부품까지 들어 있어 업체들의 인명경시 풍조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원자력발전소 부품 불량품 납품에 견주어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 수준을 질타하고 있다.
 34개 군납업체가 최근 3년간 피복·식재료부터 전차, 자주포, 헬기 등의 무기체계에 쓰이는 부품에 이르기까지 125건의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했다. 특히 군용 부품의 경도나 인장 강도가 기준에 미달하는데도 규격을 충족하는 것으로 시험성적서를 허위로 작성한 사례도 다수 적발돼 무기체계의 성능과 내구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예를 들어 손상된 전차를 구조, 정비하는 구난전차는 납품업체 3곳이 브래킷, U-볼트, 판 등의 부품을 공급하면서 무려 73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 및 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니켈(Ni) 함량이 8.02%로 나오자 규격(9.0∼13.0%)을 충족하는 9.32%로 위조한 사례도 있었다.
 더욱이 우리 군의 핵심 무기체계인 K-9 자주포(사거리 40㎞)도 납품업체 3곳이 차량걸쇠, 밀대, 절연판 등 13건의 시험성적서를 허위로 제출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인장강도가 규격 대비 20% 미달하는 11.0이었지만 시험성적서에는 13.8로 허위 기재한 경우도 적발됐다.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한 기동헬기 수리온은 납품업체 2곳이 와이퍼조립체와 APU 시동모터 등 3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 및 변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장병들이 소비하는 피복과 식재료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사례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공군 조종사용 가죽점퍼는 시험성적서 상 가죽의 두께가 위조됐고, 사출식 전투화는 앞 덮개용 가죽과 허리쇠 등의 시험성적서가 허위로 작성됐다. 군납 머스터드소스는 염분 함량이 1.20%에서 2.14%로, 들깻가루는 수분 함량이 3.36%에서 1.36%로 허위 기재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들 업체는 공인시험기관이 발생한 시험성적서를 팩스로 기품원에 발송하면서 기재내용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품원은 이번에 적발된 시험성적서 위·변조 품목은 위험도가 낮은 비핵심 품목이고 핵심 품목은 기품원이 직접 품질검사를 하기 때문에 군용품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핵심 부품이나 원자재라도 규격에 미달하는 제품을 쓰면 장비의 내구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십억 원짜리 전차도 불량 볼트 하나 때문에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납업체가 제출하는 시험성적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기품원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공인시험기관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기만 했어도 성적서 위조 및 변조 행위를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을 때 연평도의 K-9 자주포 6문 가운데 3문은 자주포 내부의 불발탄과 전자회로 이상 등으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우리 군은 결국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지 10여분 만에 뒤늦은 반격을 시작했으나 80발의 대응 사격을 하는데 그쳤다.
 당국은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하고서도 지금까지 무기 품질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약업체가 공인시험기관의 시험성적서를 직접 받아 기품원에 제출하도록 하는 시스템에서는 해당 업체에 의한 서류의 위조 및 변조 가능성이 남아 있다. 물론 그런 허점을 악용한 업체들의 죄질이 나쁘지만 이런 허점투성이의 시스템을 방치한 관계 당국의 잘못도 크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군납업체가 위조 및 변조 시험성적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기품원 직원들의 과실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군수품 비리 장병 목숨과 직결, 철저히 척결돼야
 국민의 혈세로 구매하는 군수품은 장병의 목숨뿐 아니라 국가위기관리 대응태세와도 직결된다. 군수품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고 있을 때만 북한의 도발에 즉각 응징할 수 있다. 하지만 부품을 변조하거나 질이 떨어진 것을 사용하면 해당 장비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한 두푼도 아니고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을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국방부나 방위사업청, 군납업체 등이 똑똑히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작년에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장병 피복류 보급 실태를 감사한 결과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군수품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검사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이런 사례들이 말해주고 있다.
 당시 감사 결과 신형 전투복과 운동화, 베레모 등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신형 전투복은 지난 2008년 12월부터 시작된 개발에 국민대, 국방부, 지식경제부, 차세대 국방섬유 개발협력 협의회, 육군, 국방기술품질원, 방위사업청 등 7개 기관이 참여했다. 지경부가 전투복의 원단소재 개발연구 예산을 지원하고 전투복의 소재 선정을 맡았고, 국방부는 기술·운용 시험평가, 규격·명세서 작성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7개 기관이 참여하다 보니 하자 발생은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N업체가 납품한 신형 전투복을 국방기술품원에서 기술 검사한 결과 10만 7천벌이 부적합으로 판명됐으며, 방사청은 총 12억원 가운데 2억 2천만원을 변상 조치토록 하고 그대로 구매했다.
 운동화(활동화)는 작년 5월 22일부터 7월 17일까지 102, 306보충대에 입소한 신병 1만 2천 544명에게 보급되지 않았다. 감사 결과 이런 사태는 군이 병사들의 발 크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빚어졌다. 당시 운동화 2만 3천여 켤레가 보급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보급 물량이 가장 많은 260~280㎜ 치수의 신발은 없었다. 입대하는 대부분 병사가 이 치수의 신발을 싣는다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군은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운동화 단가가 켤레당 1만 1천 117원으로 사관생도보다 2.6배나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사관생도에게도 병사와 똑같은 운동화 보급을 검토하고 있다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기능성 전투화는 2011년 초 개발에 착수해 그해 말부터 단계적으로 납품되어 보급됐다. 그러나 각개전투 때 전투화 앞부분(앞 코)이 닳고 긁히는 현상이 발생했다. 감사원이 감사한 결과 전체 가죽 두께는 기준을 충족했으나 엎드려 자세 등일 때 앞 코가 바닥에 닿아 긁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급 전 병사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시험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육군은 2010년 6월 전투모 대신 베레모를 착용하기로 했다. 이듬해 10월 육군 전 장병에게 베레모가 보급됐다. 하지만 제작 업체가 시제품과 달리 필링(마찰로 피복 표면에 작고 동그란 보풀이 나는 현상) 등의 항목에서 규격 미달인 불량품 10만 2천여개를 납품, 보급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육군은 보급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구매요구서의 필링 기준을 낮춰 규격이 맞지 않는 제품 2만 2천 295개를 납품받아 보급했다. 사용하는 장병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인 탁상행정으로 지적됐다. 우리나라 군수품 조달제도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는 것은 당시 국방부 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들어난 바 있다.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군대를 만들려면 기초적인 군수품, 부식 등의 납품제도를 투명하고 신뢰성 있게 고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