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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러시아와 만주지역의 한국독립운동사 재조명(6)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1-03-04 (목) 16:54




조선독립군과 ‘체코군단’ 1920년대 이후 만주지역 조선독립군의 주력무 기는 대부분 1차 세계대전(1914년 7월~1918년 11월)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극동러시아 블라 디보스토크에서 체코군단(Czech Legion)으로부 터 구입한 것들이었다. 특히 1920년 6월의 봉오 동전투와 그해 10월의 청산리전투 승리의 원동력 중 하나가 체코군단으로부터 구입한 신무기였다.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는 유럽의 중앙 내륙에 있는 나라이며 1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 측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식민지 였고, 러시아는 ‘동맹국’ 측과 싸우던 ‘연합국’ 측 의 일원이었다. 더욱이 1차 세계대전은 극동러 시아와는 정반대쪽인 유럽 서부에서 진행 중이 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체코슬로바키아 군대 가 극동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떤 연유로 조선인 독립군에게 무기를 넘겨주게 되었는가? 체코군단이란 도대체 무슨 군대인가? 1917년 10월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당시 유럽에서 진행 중이던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지 역(주로 연해주 일대)에 살던 조선인들의 국권회 복운동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다. 1차 세계대전 에서 러시아는 ‘연합국’ 측의 일원으로 ‘동맹국(독 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측과 접전 중이었다. 당시 러시아군 내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의 병사들로 구성된 약 6만여 명 규모의 체코군 단이 편제되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부유럽의 강자이던 ‘오스트리 아-헝가리제국’의 식민국이었다. 이들 체코군단 은 본디 동맹국 측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군 에 강제 징집되어 러시아 전선(동부전선)에 투입 되었다가,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거나 투항한 뒤 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권회복을 위해 연합군 측의 일원으로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독 일을 상대로 싸우던 병사들이었다. 당초 1914년 6월 ‘남부 슬라브족의 해방’을 주 장하는 세르비아(Serbia)의 한 민족주의자 청년 이 사라예보(Sarajevo)를 순방중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 암살사건은 1914년 7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3국 동맹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의 연합국 간 전쟁을 불러왔다. 이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영토문제와 민족간 갈 등이 국제전으로 비화한 것이다.


여기에 오스만 투르크(지금의 터키)가 독일의 동맹국으로 참전하고 일본과 이탈리아가 연합군 에 합류한데 이어, 1917년 3월에는 독일 잠수함 이 미국 상선 3척을 침몰시켜 민간인 선원들이 다 수 희생되자 미국도 마침내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 를 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참전하기에 이른다. 체코군단의 머나먼 여정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식민지인 체코슬로 바키아의 청년들을 강제 징발하여 대(對)연합국 전에 투입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연합국 측인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거나 또는 오스트리아-헝 가리제국에 맞서 조국 체코의 독립을 쟁취하자 며 러시아군에 투항했다. 이런 와중에서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에 이어 같은 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다수파) 10월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에 성공한 볼셰비키 정부는 10월혁명 이 듬해인 1918년 3월, 독일과 협상을 벌여 강화조 약을 맺은 후 ‘연합국’ 대열에서 이탈, 1차 세계대 전에서 발을 뺀다. 그런데 강화조약 협상과정에 서 독일정부는 본디 동맹국 군대였던 체코 출신 병사들이 러시아군에 붙잡힌 전쟁포로임을 내세 워 동맹국 측에 송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들 체코 출신 병사들은 포로로 붙잡히거나 투항 한 뒤, 이미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소련군에 편입 되어 독일을 상대로 싸웠었기 때문에 이들을 독 일로 송환하면 집단처형되거나 오스트리아-헝가 리 군대에 다시 강제편입될 것이 분명했다. 연합국 측은 이미 동맹국 측인 독일과의 전투 에서 용맹을 떨치면서 실전경험을 충분히 쌓은 이들 체코군단을 유럽 서부전선(프랑스의 마지 노선)으로 이동시켜 동맹국 측과의 전투에 다시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을 소련에서 프랑 스 전선으로 보내려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지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체코군단은 도중에서 동맹국 군에 붙잡히게 된다. 

1917년 12월 러시아 볼셰비키 정부와 미국은 체코군단을 신무기로 무장시킨 채 시베리아 열 차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시킨 뒤, 배를 이 용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유럽전선으로 이 동시키기로 합의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유 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총 길이 9천2백88km 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철도노선인 데다, 태평양 과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여정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가는 셈이었다. 1918년 4월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출발한 체 코군단은 무장을 한 채 수백 량의 열차에 분승하 여 무기와 식량을 싣고 고국이 있는 서쪽이 아닌 동쪽 끝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갔다. 이 열차에는 병 원·우체국·은행·신문사까지 있었다고 한다. 선 두에는 열차 전체를 철판으로 덮고 대포와 기관 총을 장착한 장갑열차가 앞장섰다.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것은 체코군단이 러시 아 중서부에서 아직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전인 1918년 11월이었으며, 한 달 전인 그해 10 월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당초 유 럽 서부전선에 투입하기로 했던 체코군단은 1차 대전이 끝나자 이제는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가 기 위해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그해 말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집결했다. 

독립군 무기대금을 위해 금가락지까지 내놓은 해외동포들 한국독립군 지도부는 이 무렵 체코군단과 접 촉하게 된다. 체코군단 지휘부와 병사들은 자 신들처럼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한국독립군에게 동병상련 의 감정을 느꼈던 듯 무기양도를 바라는 독립 군 지도자들의 제의를 선선히 받아들여, 그들 이 지니고 있던 신식무기 가운데 일부를 헐값 으로 넘겨주었다. 이들 무기는 대부분 미제 무 기들이었다. 1차 대전 때 제정러시아는 육군을 모신나강 (M1891) 소총으로 무장시켰는데, 러시아의 산 업능력으로는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 미국에 생 산을 발주했다. 체코군단은 이 무기로 무장했으 며, 한국독립군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러시아 무 기를 사들여 일본군을 물리친 것이다. 당시 체코군단 사령관 라돌라 가이다(Radola Gajda) 장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 립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조국도 수백 년간 치욕을 당하다가 이제 부활했다. 다시 만나는 날 모두 독립국 국민이 돼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록 체코군이 쓰던 중고품이고 헐값 으로 넘겨주는 것이라지만 당시로서는 신식인 무기값은 예상했던 것보다 고가였다. 당시 독립 군 지도부는 무기대금을 제대로 지불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이 같은 사정은 삽시간에 만주와 연해주에 살 고 있는 동포들에게 퍼져나갔다. 이런 사정을 알 게 된 만주와 연해주의 동포들은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너도나도 모금운동에 나섰다. 험난한 이 역에서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동포들은 있는 대 로 주머니를 털었다. 그러나 무기대금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마 침내 동포들은 가난과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처분하지 않고 그리움처럼 소중하게 간직 해왔던 금가락지며 금비녀, 옥구슬 등 패물을 내 어놓았고, 체코 군인들이 조선인들의 도자기로 구운 밥그릇 등 식기를 골동품으로 여겨 탐을 내 자 식기까지 다투어 내놓았다.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체코군단 지휘부 장교들은 놀라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북우 계봉우(北愚 桂奉禹)의 ‘반일투쟁사’). 이들 패물들은 대부분 고향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품이거나 일생에 한 번 혼인 때 소 팔고 전답 팔아 주고받은 것들이었다. 이렇게 해 서 무기대금의 일부는 패물과 체코 군인들이 도 자기로 여긴 식기로 지불 되었다. 오늘날 체코에 는 조선의 금가락지, 금비녀, 옥구슬 등 패물이 나 놋요강, 자기 밥그릇 등을 진귀한 조선 골동 품이라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체코군단의 후손들이 많다고 한다. 체코군단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합국 측이 제공한 군함에 나눠 타고 무려 2만4천km를 돌 파한 여정 끝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고국에 도착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미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붕괴 되었고, 체코 포로들의 고국은 1차 대전 종전과 함께 1918년 10월 26일 독립을 선포,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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