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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는 아직 ‘광복’의 날이 아니다 – ‘통일’까지는 ‘해방’과 ‘독립기념일’로 기념하자!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1-07-23 (금) 20:59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8월이 시끄러운 달일 수 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이 나라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국치일’과 ‘국경일’이 모두 이달에 몰 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달에는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날”인 8월 29일이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으로부터 76년 전인 1945년 제국일본이 연 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한민족에게 ‘해 방’의 감격을 안겨준 8월 15일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8월이 시끄러운 달일 수밖에 없 는 두 번째 이유는 8월 15일이 갖는 애매한 성격 에 있다. 1948년의 건국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8 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해 오고 있다. 이에 따 르면 금년은 ‘76주년 광복절’의 해가 된다. 그런 데, 우리가 지금의 시점에서 8월 15일을 ‘광복 절’로 기념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한반도 전역’ 의 차원에서의 ‘광복’은 아직 성취되지 못한 미 래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광복’의 사전적 의미 는 “빼앗겼던 땅과 잃었던 국권을 도로 찾는 것” 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1945년 8월 15일은 한민족에 게 ‘광복’을 가져다준 날이 아니다. 한민족에게 이날은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날에 불과 했다. 1910년의 국권 상실 이후, 특히 1919년 샹하이에서 기치를 들어 올렸던 ‘대한민국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한반도 내외에서 독립운동가 들에 의한 항일 독립운동이 집요하게 지속된 것 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의 힘이 워낙 미약했기 때 문에 한반도의 ‘해방’이 그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 한민족이 독자적인 발언 권을 가지고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연합국의 일 원이 되어서 전후처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미국과 영국 및 중국과 소련(당시) 등 연합국은 1943년 11월의 카이로 회담(미·영· 중) 및 테헤 란 회담(미·영·소)에서 “현재 노예상태에 처해 있 는 한국을 가까운 장래에 독립시킨다”는 원칙적 합의를 이룩했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자탄 투하 때문에 이 ‘원칙적 합의’를 구체화하는 방 안에 관한 연합국간의 합의가 채 이루어지지 않 은 상황에서 예상을 앞당겨 일본의 항복이 이루 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극동 지역에서의 일본에 대 한 개전을 미루어 오던 소련이 히로시마에 대한 미국의 원자탄 공격 다음다음날인 8월 8일 일본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고 한반도 동북단으로 재 빨리 군사력을 진입시킨 상황에서 8월 15일 일 본의 항복선언을 맞이하게 되자 자칫하면 소련 군이 사실상 불로소득으로 한반도 전체를 장악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했다.
 
이렇게 되자, 당장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는 군 사력의 여유가 없었던 미국의 트루만 행정부는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 한 고육지책으로 북위 38도선을 경계선으로 미 군과 소련군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여 점 령하는 방안을 소련의 스탈린에게 제안했으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 에 따라 미·소 양군에 의한 한반도의 군사적 분단이 초래되었다. 이에 따 라, 미·소 양군에 의하여 분할점령된 한반도의 경우,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은 ‘해방’ 이상의 상황으로 진 전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 차원에 서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 는 문제는 1945년 12월 소련의 모스 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3개국 외상 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1946년과 1947년 두 차례에 걸쳐 서울에서 열 린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됨에 따 라 1944년에 닻을 올린 UN의 몫이 되어야 했다. 미국은 1947년 9월 “한 국의 독립문제”라는 의제의 안건을 UN 총회에 상정했고 이해 11월 14 일 채택된 총회 결의 제112 (II)호에 의거한 국회의원 총선거가 다음 해인 1948년 5 월 10일 유엔임시한국위원단(UNTCOK)의 감시 하에 실시되었다. 북한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이 UNTCOK의 북한 진입을 거부했기 때문에 38선 이남의 지역에서 실시된 5.10 제헌국회의원 총 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헌 법에 의거하여 이해 8월 15일 서울에서 대한민 국의 수립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이에 대하여 북한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은 1948년 9월 9일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 화국’의 수립을 독자적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한 반도에서는 2개의 ‘분단국가’가 출현하게 되었 고 이 2개의 ‘분단국가’ 사이에 필연적으로 ‘정 통성’ 시비가 일어나게 되었다. “한국의 독립 문 제” 해결의 산파역을 떠맡은 UN은 1948년 12 월 12일 총회 결의 제195 (III)호를 채택하여 이 문제에 관한 UN의 입장을 정리했다. UN은 “UN 의 감시가 이루어지고 한국인의 절대 다수(남북 한 인구의 2/3)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인구비례 에 입각한 자유 민주선거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라는 합법적 정부가 수립되었다”면서 “이 정부 는 한반도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그러한 정부”라 고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을 “한반도상의 유일 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북한에 등장한 공산정 권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로써, 8월 15일은 1945년 한반도 전역에 서 이루어진 ‘해방’의 날이 된 데 이어서 1948 년 UN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대한민국이 ‘독립’을 성취한 날이 되었고 이로 써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는 38선 이남의 지 역”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독립’ 과 더불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광복’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관행에 따라서 문재인정부가 ‘광복절’의 회수 (回數)를 1945년부터 기산(起算)하여 금년의 ‘광 복절’을 제76회로 기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이고 회수를 1948년부터 기산함으로써 금년을 제73주년 ‘광복절’로 기념하는 것이 옳다. 이 같 은 ‘광복절’의 회수는 이 역시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로 한정되는 편법일 뿐이고 북한 지역의 ‘광복’까지 이루어져서 한반도 전역 차원의 ‘광 복’이 실현되는 것은 아직도 미결의 과제로 남 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광복’ 차원뿐 아니라 다른 차원에 서 8.15가 제기하는 난해한 문제가 또 있다. ‘건 국절’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 역시 분단된 나라 의 통일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될 때까지의 시 한부의 성격을 띈 문제이지만 대한민국의 ‘건국 일’이 1948년 8월 15일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 다. 이 나라의 보수 우익 정치세력은 그동안 기 회가 있을 때마다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하 는 것을 법제화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지만 이 노력은 ‘대한민국 샹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23일을 ‘건국절’로 기념할 것을 주 장하는 임정(臨政) 세력 중심의 ‘좌우 합작’파와 ‘종북·좌파’ 세력의 반대 때문에 지금까지 성공 을 거두지 못하고 있어서 대한민국은 ‘공식적인 생일’이 없는 나라의 신세가 계속되고 있다. 지금 문재인정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1919년 4월 23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지정하자는 주 장에는 객관적 타당성이 없다. 다른 모든 문제 를 떠나서 1933년의 ‘몬테비데오(Montevideo) 조약’ 이후 국제법은 ‘국가’ 성립의 기본 요소 로 ① 국토, ② 국민, ③ 주권 및 ④ 타국과의 조 약 체결권의 구비를 요구하는 것이 정론(正論)이 다. 그런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네 가지 기 본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했던 것 이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일본의 항복 이후 전후처리를 위하여 1951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무려 48개의 어중이떠중이 국가들이 전승국으로 참가했는데 도 한국은 여기에 끼지 못했었고 대일 항전 기 간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유일하게 우호 적이었던 중화민국의 국민당 정권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는 않았던 것이 역사적 사 실이다. 내년 3월 9일에 있을 제20대 대통령선거를 통 하여 대한민국에서 과연 “보수환국(保守換局)”이 실현될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현실 상황에서 “8.15 건국절 지정”을 논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문제의 ‘건국절’ 문제는 새 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건국절’ 호칭 문제를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에 시간과 정력을 소비할 것이 아니라 그 대 신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하는 차원에 서 이 문제 해결에 접근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과거의 ‘좌우 합작’ 세력과 ‘종 북·좌파’ 세력이 “8.15 건국절” 지정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1919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일을 ‘건국절’로 지정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대 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공산화’의 길을 열어 줄 뿐 아니라 북한이 주장 하는 사이비 ‘연방제 통일’ 방안을 한국측이 수 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사술(詐術)이 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은 ‘독립’을 기념하는 ‘생 일’이 존재하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지속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서 필 자는 일단 ‘통일’까지의 과도기간 동안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독립기념일’로 지정하 여 기념하는 법적 조치를 단행할 것을 제안한다. 금년 8월 15일을 ‘제76회 해방 기념일’ 및 ‘제73 회 독립기념일’로 기념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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