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대통령학 전문가

백두혈통까지 설 땅이 없다
지난 2월 14일, 김정남이 번잡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맹독성 신경작용제 VX에 의해 살해됐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의 신원 확인과 시신 인도를 위해 가족 방문을 요청했으나 살해될까 두려워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남이 누구인가? 김일성이 애지중지했던 첫 손자가 아닌가?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핏줄을 백두혈통이라 하지만 김정남은 백두혈통의 큰 줄기인데 이복동생에 의해 이국땅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그의 시신조차 버려진 최악의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것은 김정남의 개인적 비극일 뿐 아니라 백두혈통의 비극이고,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가 말했듯이 김정은 정권 종말의 서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 정권은 김정남 살해의 장소와 방법뿐만 아니라 시기도 잘못 선택했다. 강경노선의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뿐 아니라 북한 핵 문제 해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때였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한국으로 달려왔다. 취임한지 2주도 안 된 시기에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신임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 역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지난 3월 중순부터 한·중·일 3국을 순방한 바 있다. 틸러슨은 오산 미 공군기지에 내렸고 뒤이어 판문점을 찾는 등의 행보를 통해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며 북한을 향해 준엄한 경고를 보냈다.

북한이 가까운 시기에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수 있는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조야에 북한의 위협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강경기류가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자신의 고모부를 처형하고 고위 측근들을 연달아 처단하고 심지어 이복형까지 독살하는 미치광이에게 핵무기를 보유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김정남의 독살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독재정치도 사악했지만, 김정은정권 하에서 김일성의 유일한 사위 장성택이 처형을 당했고 김일성의 첫손자 김정남까지 피살당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북한의 일반 주민들뿐 아니라 고위간부들도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른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공포의 땅이다. 김정은 정권이야말로 21세기 세계적으로 가장 사악한 독재체제임이 틀림없다.

북한정권은 스스로를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200만 내지 300만이 기근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국가경제는 파산되지 오래 되었고 주민들은 장마당에 의해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폐쇄고립정책을 고수하며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군사도발에 혈안이 되고 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으니 주민들의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김정은으로서는 불평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공포정치뿐이다.

김정은은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공개처형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반역죄로 몰아 강건 종합군관학교 훈련장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기관총으로 공개 처형하여 시신이 산산조각 났다. 국가전략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김정은 정권 하에 지난 5년 동안 340여명의 고위 간부들이 처형이나 숙청을 당했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가 발간한 2016년 북한인권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에서 8만 명에서 12여 만 명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와 다른 불법구금시설을 포함한 북한의 구금시설은 약 182개에서 490개에 달한다. 공개 처형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으며, 주민들은 종교, 언론, 집회, 결사와 이동의 자유, 노동권 등 모든 인권을 유린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인권 유린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재판 없이 수시로 공개처형이 이루어지고, 고문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망명한 태영호 공사는 북한을 ‘노예국가’라 했지만, 북한은 그들이 선전해온 ‘지상낙원’이 아니라 ‘지상지옥’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최악의 정권이 21세기 대명천지에 존재한다는 것이 불가사이이며, 언제까지 존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형제였던 김일성과 차우셰스쿠의 엇갈린 운명
1971년 6월, 김일성이 통일이 임박했다고 큰소리치던 시기에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평양을 방문했다. 김일성과 차우셰스쿠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공통점이 많았고, 그래서 김일성은 루마니아를 세 번이나 방문한 바 있다. 두 독재자는 국민들을 굶기고 인권을 짓밟으면서도 자신의 숭배에 열을 올려 부족한 자원을 탕진했다. 김일성은 악명 높았던 독재자 차우셰스쿠보다 더 심한 독재체제를 구축했고, 남침 전쟁을 일으켜서 수백만 명을 희생시켰지만, 차우셰스쿠는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다.
차우셰스쿠는 1967년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이 된 이래 20여 년 간 독재정치를 했던 자로서 김일성과 김정일에 못지않을 정도로 통치방법이 잔인했다.

평양 방문을 통해 화려하고 웅장한 주석궁(금수산태양궁전)을 돌아보고 감명 받은 차우셰스쿠는 귀국한 후 그것을 본 딴 거대한 호화궁전을 짓도록 했다.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파탄으로 국민생활이 극도로 궁핍한 현실을 외면한 채 그 같은 일에 국력을 낭비했다. 공사를 시작한 1984년부터 5년간 루마니아 국민총생산의 30%를 쏟아 부었다. 그렇지만 1989년 12월 차우셰스쿠 부부가 살해될 당시에도 공사 진도는 80%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궁전을 짓기 위해 교회 12개, 사원 3개, 유대교회 2개, 민가 7,000호 등을 철거했다. 이 건물은 지상 9층 지하 6층으로 단일 건물로는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다. 규모뿐만 아니라 건물의 사치스러움도 극에 달했다. 내부가 온통 대리석과 금장식으로 되어 있고 3,100개의 방과 3,500개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달렸다. 이곳 대연회실에서 연회가 열리면 샹들리에의 과도한 전력 소비로 수도 부쿠레슈티의 절반이 정전사태가 일어날 정도였다.

차우셰스쿠의 경제정책도 김일성처럼 중공업우선 정책을 펴면서 국민생활이 더욱 궁핍해졌다. 모든 생필품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모든 인민이 식량 배급에 의해 겨우 생존했고, 겨울철에도 난방과 가스, 전기 공급이 수시로 중단됐다. 국민의 불만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국민 불만이 높아지자 차우셰스쿠는 당과 정부 요직에 자기친척과 연고자들을 배치하여 국민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강화했다. 차우셰스쿠의 정치는 북한과 같은 전형적인 공포정치였다. 2000만 인구에 삼백만개의 도청기와 천여 개의 도청센터가 설치될 정도로 빈틈없는 감시 때문에,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 인민들은 집안에서도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다.

최악의 경제난에도 엄청난 규모의 호화궁전 건설을 강행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었지만 그가 몰락한 이유 중의 하나는 김일성과 비슷한 우상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는 김일성이 ‘어버이 수령’, ‘민족의 태양’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자신을 ‘지도자’ 또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천재’라고 부르게 했고 자기 부인 엘레나를 ‘자애로운 어머니’로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자기 부인을 부총리로 앉히고 둘째 아들을 청년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후계자로 삼았다.

1980년대 말 동유럽 국가들의 자유화 물결을 타고 루마니아 국민들도 민주화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1989년 12월 22일, 민중봉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차우세스쿠 부부는 공산당 본부 건물에서 헬기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체포되었다. 그리고 특별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6만 명 이상의 대학살과 국가전복 기도, 경제파괴, 공공재산 착복, 도주기도 등 6가지 죄목으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부부에 대한 사형은 160여 발의 자동소총 총탄으로 이루어졌다. 사형 직후 두 사람의 시신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다음날 아침 총살이 집행된 학교 운동장 안의 차고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화려했던 독재자의 비참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다. 차우셰스쿠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을 본 김정일은 측근들에게 녹화 영상을 보여주며 “우리도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두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다피 몰락이 주는 교훈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몇 차례나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으로부터 ‘혁명의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는 등 김일성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카다피는 김일성은 물론 그의 아들 김정일의 '개인우상화 절대통치체제'를 모방했다는 점에서 같다. 또한 자기중심의 통치이데올로기, 반미(反美)주의, 호화생활 등에서도 비슷했다.

북한은 1974년 리비아와 수교한 이래 1982년 친선협조동맹조약, 1984년 군사협력 의정서 등을 맺으며 정치·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북한 정권과 카다피 정권은 그동안 ‘제국주의’ 미국에 맞선다는 공통의 기치를 내건 데다 독재정치에다 권력세습을 추진하는 등 공통점이 적지 않아 서로 ‘맹방 중의 맹방’으로 여겼다. 특히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했고, 과거 리비아가핵개발을 추진했을 때 북한과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도 받아왔다.

40여년 철옹성 같은 독재정치를 했던 카다피도 ‘아랍의 봄’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11년 2월 15일, 동부 벵가지에서 민주화의 불길이 타오른 후 187일 만인 8월 21일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의 관저가 반정부 시민군의 공격에 의해 함락되면서 카다피와 가족은 그의 고향 시르테(Sirte)로 도망갔다. 김일성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카다피는 자신의 관저 지하에 유사시 탈출할 수 있는 비밀 통로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시민군이 카다피를 체포하지 못했다고 한다.

카다피는 시르테에서 전차와 전투기를 동원한 살육전으로 맞대응했으나 이 때문에 오히려 나토의 공습공격을 받는 가운데 내전이 벌어졌다. 10월 20일, 42년 동안 리비아 국민을 숨죽이게 던 카다피는 자신의 고향의 한 하수도 구멍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었다. 그는 보신용 황금권총을 들고 있다가 다가오는 시민군 병사들에게 발각되자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성난 시민군에 의해 관자놀이와 복부에 총을 맞는 부상을 입고 이로 인해 끝내 사망했다.

1969년 집권한 카다피는 42년이나 무자비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보다 장수한 독재자는 49년 집권한 쿠바의 카스트로와 46년 권좌에 있었던 김일성뿐이다. 북한의 김씨 일가와 리비아의 카다피 일가는 비슷한 점도 많았다. 두 집안 모두 피를 부르는 철권통치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가디피는 1993년 자신을 암살하려던 군부대를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폐허로 만들었고, 1996년에는 정치범이라고 하면서 1,200명이나 학살했다. 북한도 김씨 일가에 반대하는 수십만의 정치범들이 고초를 겪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서방세계를 상대로 위협을 하고 테러를 일삼은 점도 비슷하다. 카다피는 1980년대에 서베를린의 나이트클럽과 미국 민항기를 폭파했지만, 북한도 1968년의 청와대 공격 미수 사건을 비롯하여 버마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한국 민항기 폭파 등을 자행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핵무기와 미사일로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가디피를 ‘중동의 미친개’라고 불렀지만, 현재 미국 지도자들은 김정은을 ‘미치광이’로 보고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끝날 때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차우셰스쿠와 카다피의 최후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역사에 역행한 자는 반드시 역사에 의해 심판받는 다는 것이다. 히틀러도 그랬고 무소리니도 그랬다. 또한 국민을 탄압하면 반드시 국민에 의해 징벌 당한다는 것이다. 인민대중은 그들을 괴롭혔던 탄압을 결코 잊지 않고 기회가 오면 분연히 일어나 압제자를 반드시 처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차우셰스쿠나 카다피보다 훨씬 더 극악한 독재자였던 김일성과 김정일은 비참한 최후를 면했다.

그렇다면 북한만은 예외라는 것인가? 차우셰스쿠의 몰락은 동유럽 민주화 바람 때문이다. 동유럽 민주화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개혁과 개방으로 민주체제로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다피의 몰락도 ‘아랍의 민주화’ 때문이다. 북한이 동유럽에 위치해 있었다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최후도 차우셰스쿠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공산주의가 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이 북한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은 핵과 미사일로 동북아를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형까지도 독살하는 김정은을 계속 감쌀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역사에 역행하는 북한을 좌시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종말은 시간문제로 본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방심 또는 무관심이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 이래 우리는 북한이 붕괴되기만을 기다렸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중국의 보호로 인해 북한의 붕괴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본다. 더구나 간악한 집단은 최후의 순간에 어떤 무모한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나먼 태평양 건너 있는 미국이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고, 우리나라보다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일본에서 비상상태인데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마주앉아 대화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70년 동안 속고 당했으면 북한의 실체와 의도를 알고 그에 철저히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정남을 독살한 VX는 대량살상을 하는 화학무기 원료다. VX 성분의 화학무기를 우리 대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나 지나가는 장소에 뿌려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즉사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유엔은 화학무기를 금지하고 있지만 북한은 5,000여 톤에 달하는 대규모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화학무기 1,000톤이면 4,000여 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13종의 생물학 무기도 개발하고 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폭탄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최소 50만에서 최대 150만 명이 즉사하고 방사선 피폭으로 1~2년 내 사망자는 그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 다른 수백만 명은 몸속에 남아 있는 방사선의 영향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북한의 위협이 너무도 오랫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만성이 되어 대부분 방심하거나 무관심이다. 과연 방심하거나 관심을 꺼도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