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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리전투와 몽클라르 리더십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0-02-05 (수) 13:12

6·25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얼마 전 ‘지평리 압승’으로 유명한 역사의 현장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지평리전투 전적비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지평리 분지를 바라보면서 그때 전투장면을 상상하며 머릿속에 그려봤다.

6·25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것은 인천상륙작전과 미군 제 2사단 제23연대전투단에 배속된 프랑스군 대대가 주도한 지평리 전투였다.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파죽지세로 밀리면서 한반도에서 유엔군의 철수까지 검토하게 되었다. 이 때 최초 전세를 역전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몽클라르가 지휘했던 프랑스 대대였다.

프랑스군 참전 배경 프랑스는 당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도 국내외 사정으로 기존부대의 파병이 어려워 현역과 예비역중에서 지원자들로 편성 된 보병 1개 대대를 파병했고, 지원병들은 모두 현역과 예비역으로 구성됐다. 현역과 예비역의 비율은 장교의경우 5:5였고, 부사관은 7:3이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1:9였다. 이는 당시 프랑스 육군의 현역 부족 현상을 잘 나타내준다. 각 중대는 지원병들의 과거 경력과 출신을 고려해 편성했다.

그러나 프랑스대대는 전투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부분 인원이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실제 참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다. 프랑스 대대는 단순히 국가적 이익의 차원을 넘어 똑같은 목표와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편성된 부대였다. 1·2차 세계대전의 역전의 용사이자 계급이 중장이었던 몽클라르 장군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하여 대대장직을 맡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 대대에는 한국군 1개 소대가 배속되었는데, 전쟁기간 중프랑스와 한국의 장병들이 산과 들을 누비며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몽클라르는 한국군 병사 2명을 선발하여 프랑스 ‘쌍시르’ 육군사관학교에 추천하여 입학시키고, 임관시켰다.

기적 같은 대승, 지평리전투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미국 제2보병사단 23연대전투단과 이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중공군 39군과 3일간 벌인 격전이다.

1950년 10월말 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압록강 초산까지 올라간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에
3개월간 정신없이 밀렸다. 중공군은 1951년 1월 당시 수원과 이천, 횡성을 점령하고 원주와 여주 부근까지 차지했다. 승승장구하던 중공군은 8개 연대 3만 명을 앞세워 지평리를 에워싸고 진격해오고 있었다. 지평리는 횡성과 여주에서 35Km, 원주와 이천에서 40Km 각각 떨어진 군사적 요충지였다.

한편 유엔군은 지평리를 에워싼 산들에 전초부대를 파견할 만큼 병력이 넉넉지 않았기때문에, 23연대장 프리먼 대령은 마을 주위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리하여 23연대 3개 대대와 용맹한 프랑스군 1개 대대 및 1개 레인저중대(Ranger Company)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전차 14대, 중(重) 박격포 그리고 105밀리 곡사포 18문, 155밀리 대포 6문이 요소요소에 배치시켰다. 이른바 23연대전투단의 진용이 갖추어진 것이다. 지평리를 지키던 미군 23연대 3개 대대 5,500여명과 프랑스 1개 대대 500여명을 6Km에 걸친 방어선을 따라 2,000여개의 참호를 파고 중공군을 맞았다.

중공군들이 꽹과리치고 나팔과 피리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인해전술로 프랑스군 진지로 공격했을 때, 프랑스 대대는 먼저 휴대용 손싸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기선을 제압하고, 착검을 한 프랑스군들이 용맹스런 함성을 지르고, 수류탄을 던지며 중공군을 향해 돌진했다중공군이 항상 사용해왔던 인해전술이 먹혀들지 못하고 오히려 당황하기 시작했다.

병력은 불과 1개 대대에 불과했지만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막아낼 수있었다. 프랑스군은 외인부대 용사답게 ‘최후의 1인까지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싸워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군 포병화력의 최대 활용, 공중전력 지원, 기관총 사용의 극대화 그리고 야간전투에서 C47 항공기에 의한 조명탄 투하작전과 대대장 몽클라르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몽클라르의 부하를 지휘 통솔하는 리더십이 탁월한 결과였다. 그는 전장에서 싸워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리먼연대장 역시 전투 중 부상을 당하고서도 계속 싸우다가 전투 마지막 날 후송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지휘관이었다. 이 전투는 프리먼 연대장과 몽클라르 대대장이 합작품이었다.중공군 3만 명 대 23연대전투단 6천여 명이 싸워 미군과 프랑스군은 52명 전사, 42명 실종,259명 부상을 당했을 뿐이지만 중공군 5,000 여명이 전사하는 기적과 같은 대승을 거뒀다. 몽클라르의 리더십 몽클라르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1892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헝가리 출신의 귀족이었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한국에 파병되기 전에 현역 육군 중장이었다.

몽클라르는 개명한 새 이름이었고 원래 이름은 마그랭 베르네르(Magrin Verneney)였다. 랄프 몽클라르(Ralph Moclar)는 1940년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인해 가족이나 친척이 나치로부터 박해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한 것이다.
당시 국방부차관은 “미군은 대대장이 중령인데 어떻게 중장이 가느냐?”고 묻자, 몽클라르는 “그러면 중령 계급장을 달고 가겠다.”고 하였다.
 
계급에 죽고 계급에 사는 군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몽클라르 장군은 ‘계급에 죽고 계급에 사는 군인이 아니라 전쟁에 죽고 전쟁에 사는 군인’이었고, ‘계급보다 더 중요했던 자유에 대한 신념’이 강한 장군이었다. 기적과 같은 승리를 이끌어낸 몽클라르의 리더십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그는 고결한 군인정신을 심어 주었다.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희생할 것, 병사 각각에 주의를 기울일 것, 부정한행위들을 묵과하지 말 것, 자신의 고통을 무시할 것,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을 극복하기위해 노력할 것’ 등의 교훈을 그의 소년병 시절부터 얻게 되었던 것이다.

몽클라르는 ‘자유를 위해 싸우자’는 뚜렷한 전쟁목표를 제시하는 등, 정신력을 중시했다. 아울러 장병들에게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 활기 있고, 열정적이며, 활동적인 인간이 되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인부대의 덕목인 용맹을 강조했고, 부하들의 정당한불평에 귀를 기울였고, 그렇게 함으로서 부대원간의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부하들이 고칠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는 관용과 이해로 대했다. 그는 항상 병사들과 같이 숙식을 하고 진지의 참호 속 병사들을 일일이찾아보았으며, 각자의 이름을부르고 격려하면서 열심히 싸우기를 독려하고 이곳저곳 전투 장소를 누비고 다녔다. 이러한 것들이 몽클라르를 믿고 따르게 했고,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같은 놀라운 승리는 바로 몽클라르의 참된 군인정신과 탁월한 리더십의 결과였다.

희생과 자유와 평화의 가치 오늘날 우리들은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터키, 심지어 에티오피아, 콜롬비아까지 와서 우리를 위해 싸워줬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 미군과 프랑스군은 혹독한 추위, 전술적으로 불리한 지형여건 속에서도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한국을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선에서 잘 싸워준 몽클라르의 프랑스군에 한 없이 고맙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잘못된다면 우리가 잘못 한 탓도 있지만,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위해 피 흘린 사람들에게 배신한 것과 같다. 한 나라의 자유와 평화는 공짜로 거저 얻어지는 것은 결코 없다. 자기나라를 스스로 지킬 의지와 힘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과거 역사는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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