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없음
남북 이산가족문제의 경과와 북한의 접근행태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1-03-04 (목) 15:38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

코로나-19’ 상황으로 우리는 얼마 전 민족고 유의 명절인 ‘설’을 예년과는 달리 ‘민족대이동 현 상’을 뒤로 한 채 씁쓸하게(?)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의 여파는 이런 명절을 계기로 하여 대폭 확산될 우려가 매우 컸고, 이 때문에 우 리 국민들 대부분은 “소(小)를 위해 대(大)를 희생 하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즈음 필자는 청년시절 종종 읊조렸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영혼속에서…잊어야만 하는 그 순간까지 널 사랑하고 싶어…”라는 가사를 떠올리면서 남 북 이산가족문제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 가사는 1970년대 한동안 유행하 던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라는 대중 가요의 가사(歌詞)로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이 별을 묘사하는 것이었지만, 분단 70여 년에 이르 는 긴 세월 동안 헤어진 혈육과 가고 싶은 고향 땅을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는 이산가족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 이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 모두는 짧은 일 생을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아마도 가장 큰 것은 바로 사랑 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애절 한 것은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흔히들 우리는 남북한의 분단을 종결하고 평화 통일을 이룩해야 될 이유로 ① 동족(同族)인 남북 한의 모든 구성원에게 자유와 인권,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② 분단구조의 불안정성과 비정 상(非正常)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 하기 위해 ③ 분단으로 인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잡고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민 족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④ 통일이 되면 남북 한의 모든 국민들이 다양한 편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⑤ 통일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을 제 거함과 통시에 평화정착을 이루어 동북아 및 세 계평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한의 과도한 군 비경쟁을 유발하는 현 분단구조를 해체하면, 남 쪽의 풍부한 자본과 고도의 기술이 북한의 토지 와 양질의 노동력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함과 동시에 군비(軍費)를 민수(民需)로 전환할 수 있으며, 북한에 무진장하게 매장되어 있는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는 지하자원을 통해 통 일한국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며, 원 래 하나였던 우리 민족이 반만년간 이어오고 있 는 찬연한 역사와 1,300여 년에 이르는 ‘통일국 가’로서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 결정적 전기(轉機)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의 이유 때문에 우리는 분단 이 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 에도 소원을 통일”이라는 바램을 간절하게 읊조 려 왔고, 앞으로도 평화통일이 이룩되기까지 우 리는 이런 절절한 염원과 소명(召命)의식을 결코 게을리하거나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우리 민족에게 있 어 가장 절절하고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이산가족의 상봉’이나 ‘고향 방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국토의 분단, 그리 고 정치적 체제적 분단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과 비원(悲願)과 통한(痛恨)을 가슴 속에 안고 살아 가야만 하는 이산가족문제의 해결이 다른 어떤 이유나 필요성보다도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남북한이 이산가족문제 를 맨 처음으로 해결하게 된 계기는 지금으로부 터 30여 년 전인 1980년대 중반이었다. 물론 이 전인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파견원 접촉으로 남북적십자회담이 시작되어 25회의 예비회담을 거쳐 1972년 8월 제1차 적십자본회담에서 생사 및 주소확인,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서신교환, 재결합, 인도적 협력 등 5개항에 합의하였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84년 8월 수도(首都)인 서울에 폭 우로 인한 엄청난 수재(水災)가 발생하자 북한은 쌀과 시멘트, 천 등 수재물자를 제공하였고, 이 를 계기로 1985년 추석을 기하여 남북간에는 분 단 사상 처음으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사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 루어졌다. 이후에도 남북간에는 이산가족의 정례적·직접 적인 상봉과 화상상봉,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등 에 관련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수차례의 남북 적십자회담을 열었으나, 그 때마다 북한측의 “주 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의 정치적 선결조건 제시 등으로 인해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런 과정에서도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총 4천여 회, 2만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상봉하였으며, 개성에는 이산가족 면회소도 건립되었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남북정상 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 한 판문점선언’(2018.4.27.)에서 “8·15 계기 이 산가족상봉행사 진행 및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를, ‘9월 평양공동선언’(2018.9.19.)에서는 “이 산가족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① 금강산지역의 이 산가족 상봉면회소를 빠른 시일내에 개소, 이를 위해 면회소시설을 조속히 복구, ② 적십자회담 을 통해 이산가족의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 문제를 우선 해결할 것”을 합의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여 2018년 8월 20일부 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292가 족 1,996명이 생사를 확인하였고 총 170가족 833명이 상봉하였으며, 그해 10월 15일에는 ‘평 양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고위급회담에 서 금강산지역 이산가족면회소의 복구와 화상상 봉, 영상편지 교환을 위한 실무적 문제들을 문서 교환방식으로 협의한 뒤 적십자회담을 11월 중 금강산에서 진행하자고 합의하였다. 그러나 문서협의가 지체되면서 회담은 예정 대로 개최되지 못하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정 부는 이산가족 관련 자료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하고, 이산가족찾기를 희망하는 신청자를 받아 관리해 오고 있는데, 2019년 12월말을 기준으 로 13만3,370명이 등록되어 있다. 통일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2021.2.12)에 따 르면, 2018년 8월을 마지막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중단된 가운데 지난해에만 3,342 명이 세상을 떠나 현재 4만9,154명만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 이들 중 100세 이상의 ‘초고령 이 산가족’은 580명이며, 90세 이상 1만4,191명 (28.9%), 80대 1만8,876명(38.4%), 70대 9,312 명(18.9%)으로 전체의 86.2%가 70대 이상인 것 으로 조사되었다. 무심하게 세월을 흘려 보내서는 안된다. 이렇듯 이산가족의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가 운데 경색된 남북관계에 더하여 지난해 6월 개 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측에 의해 폭파되고 ‘코로나-19’를 이유로 북한당국이 지 난해 1월부터 13개월째 국경을 굳게 닫아걸고 있기 때문에 언제 다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재개될 수 있을지 낙관(樂觀)만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통일부장관 이 남북한간 화상상봉을 추진하고 ‘코로나-19’ 상황이 진전되는 대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것이라는 강한 정책의지를 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이산가족들이 오매불망(寤寐不 忘) 헤어진 혈육과 상봉을 하고, 꿈속에 그리던 고향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는 마치 ‘강 건너의 등불’처럼 매우 희박해져 가고 있다.

 특히 순수한 인도적 차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절박한 사안(事案)으로 추진해야 할 이산가족문제에 대해 북한당국은 ‘개방’을 유 도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체제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치적 문제’로 간주하면서 매 우 소극적인 입장과 자세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장난명(孤掌難鳴)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즉 북한에서는 이산가족을 최하위계급인 ‘적 대계급 잔여분자’로 분류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불이익과 차별을 가하는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 기 때문에 만약 이들이 재남 가족을 상봉하게 된 다면, 그들 체제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것 이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명(餘命)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결코 소 홀하게 취급할 수 없으며, 다른 어떤 문제보다 최우선적으로 추진하여 이들이 평생 간직하고 있던 비원(悲願)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풀어 줄 수 있도록 북한당국을 설득하고 회유하는 노 력을 중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우리 국민 모두가 절절하게 바라고 있는 평화통일의 가장 큰 관건(關鍵)은 이산가족문제 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과 장애가 있더라도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설정하여 더 이 상 “무심하게 세월을 흘려 보내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이 문제의 해결에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평화통일의 첩경(捷徑)이기 때문 이다.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 (체크하면 글쓴이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본사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96파크뷰타워 208호 (사)21c안보전략연구원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아 02284 / 발행인 : 박정하

정기간행물등록번호 :서울라10600 / 대표전화 : 02-6953-0031, 02-2278-5846
팩스 : 02-6953-0042, 02-784-2186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정하

군사저널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새소식

Copyright ⓒ군사저널. All rights reserved.